이치노세 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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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노세 치카

『난 행복할 자격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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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일 2026-05-31 | 수정일 2026-06-01
▶ BGM (배경음악)

▶ VOICE (음성 기록)

[ 이치노세 치카, 닉네임 "이츠카"의 일지 ]


태어날 때부터 나는 남들과 달랐다고 한다.

SMA.

이름도 어려운 그 병 때문에 남들은 걸을 때 나는 휠체어에 올라탔고,
남들은 학교에 갈 때 나는 병원으로 갔다.

학교에선 '친구'를 만들 수 있다던데.
그건 무슨 느낌일까?


이따금씩 숨이 안 쉬어지면 몸에 뭔가 차가운 걸 잔뜩 붙여야 했다.
아픈 주사도 매일 맞았는데 왜 낫질 않는 걸까?

한번은 엄마랑 아빠가 우는 걸 봤다.

무섭고 아파도 가만히 참으면 엄마 아빠가 울지 않았다.

"...나 괜찮아."

그래서 괜찮은 척 했다.

그랬더니 엄마 아빠도 괜찮은 척 웃으면서, '빨리 다 나아서 집에 가자'고 했다.

바보같다.
나도 다 들었는데.

18살이 되기 전에 죽을거라고.


사실 집은 기억도 안 난다.
가장 오래된 기억도, 이 병실이었으니까.


난 늘 침대에 앉아 창문 밖을 보면서 저 구름 사이를 나는 상상을 했다.

저 구름은 여기보다 훨씬 푹신하지 않을까?
구름을 먹으면 생크림처럼 달콤한 맛이 나지 않을까?
그런 동화처럼 바보 같은 상상.

좁은 병실보다 내 맘대로 안 움직이는 이 몸뚱이가 제일 답답했으니까.


생일이 되면 케이크와 동화책을 받았다.
생일이란건 참 이상하다.
왜 내가 태어난 걸 축하하고, 선물을 주는 걸까?
그래도 조금은 기뻤던 것 같다.

7살 생일날, 처음으로 엄마 아빠한테 떼를 썼다.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

놀이공원이 뭔지도 몰랐으면서,
그냥 남들 다 가는 곳이라니까 나도 한 번은 가봐도 되잖아.

신은 날 미워하는 게 아냐.
그냥 나한테 조금 실수한 거야.
그렇게 믿고 싶었나 보다.


엄마 아빠는 곤란하게 웃으면서 날 휠체어에 태우고 나갔다.

비가 진짜 많이 오는 날이었다.

나는 차 뒷자리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흐린 창 밖을 바라봤다.


놀이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들이 우리랑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울면서 떼쓰는 또래 아이들도 보였다.

추웠다. 그리고 불도 다 끄니까 엄청 어두웠다.

"오늘 비가 많이 와서, 놀이기구에 못 탄대. 미안해."


왜 엄마가 미안해?
엄마의 슬픈 표정을 보니, 나는 더 심술이 났다.

비가 이렇게 온건 엄마가 잘못한 게 아닌데.
놀이기구는 필요없어.
엄마가 슬픈 건 싫어.
나는 다른 아이들을 보고 배운대로,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그러니까 아빠가 비를 뚫고 솜사탕이라는 걸 사왔다.

생긴 게 꼭 내가 맨날 보던 구름 같았다.
그리고, 정말 생크림처럼 달콤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솜사탕을 꼭 쥐고 있었다.

손은 끈적거렸는데, 너무 행복했다.

아, 놀이공원에 가자고 떼쓰길 잘했다.
매일매일이 오늘 같았으면.

그렇게 생각하고 흥얼거리는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미소.

"치카, 그건 무슨 노래니?"

처음이었다.
엄마 아빠가 그렇게 밝게 웃는 걸 보는 건.
오늘은 투정만 부린 나쁜 아이였는데도.

"...생일 축하 노래."

나도 웃어도 되는걸까.

그리고 몇 초.

그 미소 뒤로,
빗길에 미끄러지는 엄청 큰 트럭이 보였다.


부모님은 그렇게 떠났다.
나를 간호하던 이 병원에서.
마치 빗길에 떨어진 솜사탕처럼.

그제야 알았다.
신은 실수한 게 아니라, 진짜 날 끔찍하게 미워한다는 걸.
내가 바라는게 너무 많았어서.

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엄마랑 아빠가 그렇게 된 거야.
사과도 못 했는데.

내가 그날 떼를 쓰지만 않았어도.
난 행복할 자격 따위 없다는 걸 조금만 일찍 알았어도.
나 같은게 태어나지 않았으면 엄마 아빠는 행복했을텐데.

나만 혼자 두고 가지마.

나도 죽여달라고 빌었지만, 의사와 간호사들은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어차피 금방 죽을 몸인데 왜 억지로 살려두는 건데?

나를 불쌍한 눈으로 보고 혀를 차면서,
"저런 인생도 있는데…" 하고,
자기들 위로받으려고 날 살려두는 거잖아.

……
그래, 살아 줄게.

'에덴'에서, 영원히.


[ 도쿄 중앙 병원 제1병동 : 간호사 마이의 일지 ]


[ 10년 전, 비 오는 날 ]

7살 여자아이가 교통사고로 피투성이가 되어 실려 왔다. 이치노세 치카. 우리 병원에서 SMA(척수성 근위축증) 재활 치료를 받던 그 작은 아이다. 부모님은 현장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너무 끔찍한 일이다.

[ 3일 뒤 ]

치카가 마침내 눈을 떴다. 몸 상태는 사고 전보다 훨씬 악화되어 있었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허공을 보던 아이가 처음으로 뱉은 말은...

"엄마랑 아빠한테 갈래요."

7살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만한 일이 아니다. 가슴이 무너진다.

[ 1개월 뒤 ]

도통 말도 없고, 밥도 먹지 않는다. 예전엔 아주 사소한 일에도 수줍게 기뻐하던 아이였다던데.
내 조카에게 노트북을 사줬을 때 뛸 듯이 기뻐했던 게 떠올라, 병실에 안 쓰는 노트북을 하나 가져다 두었다. 치카도 조금은 좋아해 줄까.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 3년 뒤 ]

치카는 노트북에 완전히 푹 빠졌다. 사실, 아이는 천재였다. 그녀가 그토록 집중해서 타이핑하던 건 가상현실 소셜 플랫폼 '에덴(Eden)'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 어린 나이에 시스템 총괄 프로그래머라니.

[ 에덴 정식 출시일 ]

에덴이 출시됐다. 기존의 VR챗과는 달리, 뇌파를 통해 감각을 아바타와 완벽히 동기화한다고 했다. 나도 '뇌파 동기화 고글'을 써보았다. 굵은 유선 케이블이 조금 섬뜩했지만, 비상 로그오프 시스템이 있어 안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한한 디지털 세계를 누비고, 취향에 맞는 개인 맵을 창조하며 시간을 보낸다. 치카, 네가 침대 위에서 꿈꾸던 자유로운 세상이 이런 거였구나. 조금은 알 것 같아.

[ 최근 ]

에덴 내부에 '서펀트(Serpents)'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위협이 등장했다. 고도의 바이러스인지, 악의적인 해커 집단인지 알 수 없는 이들이 비인가 무기로 유저를 사냥한다. 서펀트를 제거하려면 직접적인 '싸움'을 해야 한단다. 무서워서 나는 접속을 끊었다. 치카도 서펀트 문제로 최근 매일 모니터 앞에서 심각하게 굳어 있다.


[ 1개월 전, 그녀의 생일 6월 11일 ]

치카가 가장 싫어하는 날, 그녀의 생일.
치카는 코마에 빠졌다.
몸 상태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몸은 1년 남짓 아직 남았으니까.

치카는 고글을 쓰고 에덴에 동기화된 상태로 의식을 잃었다. 함부로 고글을 벗기거나 동기화를 풀면 뇌에 영구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저 아이를 생명 유지 장치에 연결하고, 스스로 깨어나 로그오프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지 걱정된다.
치카, 에덴으로 가면 널 만날 수 있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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