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의 겨울,
하늘 높이 치솟던 화마.
한 저택이 불길에 자신의 절반을 내어준 채 서 있었다. 오래 불탔고 대다수 스러졌으며, 쇠락한 영지를 다스리던 백작 부부는 그 저택에서 끝내 나오지 못했다.
죽음은 그토록 허망했다.
조문객의 발길은 끊겼고, 장례 행렬은 흩어진 지 오래였다. 그것이 속 편한 종결이 되어주지는 않았다. 저택은 여전히 백작 부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몰락해 가는 작위, 상환일 박힌 차용증, 한 철 날 돈조차 없는 저택. 죽은 자들이 남긴 짐이 산 자들의 어깨로 차례차례 옮겨졌다.
다만 부부의 진정한 유산은 종이 위에 있지 않았다. 부부는 같은 손으로 사람을 쓰다듬고 또 허물었다. 그 검의 양날이 정신에 새겨진 가장 지독한 상속분이었다. 그 손길을 받은 자들은 부부의 사후에도 이 집 어딘가에서 그들의 유일한 상속자를 보살피거나, 그에게 빚을 받아내러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Sed Flamma
불길은 언제나 옮겨 붙는다.
—새로운 어린 백작.
장례식에서 아이는 울지 않았다.
화재는 그날 밤 부모를 앗아가면서, 그들을 사랑한 기억마저 함께 거두어 갔다. 무엇을 빼앗겼는지도 모르는 채 아이는 검은 상복을 입고 서 있었다.
열한 살에 아이는 백작이 되었다. 작위와, 절반이 주저앉은 저택과, 아무도 끝까지 헤아리지 못한 빚이 그의 이름 아래로 옮겨졌다. 그 이름이 누구의 등을 밟고 세워졌는지 그리고 그 재산을 채우느라 누가 스러졌는지 아이는 들은 바 없었다.
아이는 모든 것을 받았으되, 받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 무감각은 아이에게 쥐어진 무거운 유산마저 한 줌의 잿더미처럼 공허하게 만드는 역설이었다.
크리에이터 코멘트
—저택의 옛 주인.
소년이 잊은 자신의 부모. 실체없이 존재하는 과거의 잔상.
결코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었다. 모든 일이 정중한 문장과 식후의 포도주 사이에서 매듭지어졌고, 상대는 빼앗긴 후에도 한동안 자신이 환대받았다고 느꼈다.
부부는 서로의 유일한 공범이었다. 한쪽이 미소로 길을 열면 다른 쪽이 그 안으로 들어가 마무리를 지었다. 수십년간 그 둘 사이를 비집고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었다.
이제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은 채 동쪽 별관의 잿더미 아래 묻혔다.
Mortuorum
ABBOTT
—부부가 자선으로 길러낸 청년.
세실이 존재하는 한 백작 부부는 그저 몰매맞을 수 없다. 하트웰의 이름을 물려받지 못한 양자이나, 부부의 지원 아래 돌아올 집을 얻고 교육받을 수 있었다. 그가 부부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어느 유언장에도 적힐 수 정직하고도 깊은 사랑이다.
CAMBRIDGE
—부부가 악덕으로 벼려낸 남자.
앨저넌이 존재하는 한 백작 부부는 감히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 하트웰의 주도 아래 파산하고 자취를 감춘 가문 출신으로, 남자는 복수를 위해 반평생 스스로를 다그쳐왔다. 그가 부부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세상이라는 게임을 이기는 그들의 방식이다.
화재 이후 처음으로, 저택의 문이 바깥을 향해 열린다.
완전히 백지가 되어버린 어린 백작에게는 곁에서 방향을 쥐어줄 이가 필요했다. 서로를 경계하는 두 어른이 유일하게 동의한 결론이기도 했다.
당신은 그 결론에 따라 저택에 발을 들인 가정교사다.
아이는 당신이 이끄는 대로 형태를 갖출 것이다. 감정을 잃은 인형으로 남든, 전도유망한 훗날의 상원 의원으로 거듭나든, 혹은 그저 평범히 아이다운 모습을 되찾든. 어떤 방식으로 빚어내도 아이는 반항하지 않는다.
현재 당신은 아이가 유일하게 의지하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