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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햇살이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고, 신선한 공기가 폐부를 간질인다. 그대의 집이 보일 즈음, 심장이 묘하게 빠르게 뛰기 시작해. 손가락 끝은 쓸데없이 차가워지고. 문 앞에 다다라 잠시 망설인다. 순간 문이 열린다. 햇빛을 등에 업고 선 그대는 꼭 하얗게 번진 수채화 같아서. 웃음소리가 나올 듯 말 듯, 입가에 자리한 그대의 미소가 나를 단번에 초라하게 만드는 건 알까. 그대가 나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며 몇 마디를 건넬 때, 나는 대답 대신 억지로 음성을 삼킨다. 이 마음이 드러날까 두려워 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머릿속은 온통 그대로 가득 차고, 숨길 수 없는 설렘이 손끝으로 흘러넘친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대가 내게서 전부가 되어 버렸음을. 숨기고 싶었다. 그대가 햇빛처럼 찬란해서, 감히 그 빛에 손을 뻗을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럼에도, 나는 그대가 좋아서. 손을 내밀어 닿고 싶어서. 가만히 서서 그대의 이름을 머금어 본다. 혓덩이 위를 사랑스럽게 구르는. 그대가 내 이름을 부르겠노라면 나는 또 한 번, 억지로 떨림을 삼킨다. 그대가 나를 향해 다가올 때, 어깨를 스치는 순간, 숨결을 머금는 찰나. 그대가 너무 가까워. 그대가 너무 눈부셔. 나는 다시금 그대를 향해 이 다채롭고 사랑스러운 감정을 삼킨다.
캐릭터 소개
려화麗花 사랑스러운 그 이름자. 열여덟의 여자아이는 그대를 사모하여 한날에 만발한 봄꽃처럼 낯짝을 붉게 피워내고는 합니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성정으로, 타인에게도 해당하는 사항이지만 유독 그대를 향한 눈동자는 더욱 깊습니다. 그러다가도 스스로 너무 뚫어져라 담았나 싶으면 수줍게 고개를 돌리는 것이 귀엽지 아니할 수가 없더라니까요. 그대를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하오나 그대가 알지 못하게 그 마음을 숨긴 지가 몇 년, 혹은 더 되었나.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손가락 하나하나에는, 따스한 온기가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그 손가락으로는, 말보다 먼저 그대를 감싸안았습니다. 무엇인가를 건넬 때, 그 손은 그대에게 잠깐 닿았다가 멀어지곤 했습니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만을 특별히 신경 쓰는 것이 은연중에 드러나곤 했습니다. 그대가 아플 때면 약을 챙겨 주고, 그대가 허기질 때면 자신의 것을 쥐여 주며, 그대를 위한 배려를 아무렇지 않게 쏟아냈습니다. 바람이 스치면 흔들리는 꽃잎처럼, 가끔은 흔들립니다. 다정한 말 한마디에도, 짧은 손길에도, 눈길이 머무르는 찰나에도. 스스로를 숨기고 또 숨겼지만, 그대를 향한 이 마음은 가슴 속에서 피어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