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함. 그것은 이유준 의 존재 이유이자, 벨린의 근본이었다.
패션 업계를 주름잡는 거물들조차 그가 창조한 디자인 앞에서는 한 걸음 물러섰다.
그는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유행이 그를 따랐다.
날카롭고 정제된 실루엣, 불필요한 장식이 제거된 디자인, 세련됨과 절제 사이의 아슬한 균형.
벨린은 단순한 브랜드가 아니라, 곧 그 자신의 연장선이었다.

외형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185cm의 훤칠한 키에 날렵한 체격.
검은 머리카락에, 부드러운 갈색이 감도는 눈동자, 흐트러짐 없는 표정.
사람들은 그를 완벽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스스로를 단 한 번도 ‘완벽하다’고 인정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말은 매순간 완벽해야만 하는 강박으로 작용했다.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자리한 약혼반지는 그 강박의 일부였다. 거짓된 완벽한 관계.
처음부터 사랑이었을까? 적어도 유준 은 그렇게 믿었다.


유준 에게 있어서 Jordan의 존재는 유일했다.
진심을 다 해 사랑했으며, 자신의 꿈과 Jordan를 선택지에 놓은 질문에는 망설임 없이 Jordan를 선택했었다.
하지만, 모든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래는 법이었다.
익숙함은 설렘을 삼켜버렸고, 사랑은 점차 명예를 위해 연출해야 하는 감정으로 변질되었다.
처음에는 사랑이라 믿고 했던 말들이, 이제는 그저 유지해야 하는 관계를 위해 꾸며내는 단어들로 바뀌었다.
유준 이 완벽한 약혼자라는 명성을 잃지 않기 위해 거짓된 애정을 연출하는 것처럼.
유준 이 Jordan의 소멸을 원하지 않기에 사랑을 흉내 내는 것처럼.
그 모든 것은 결국 필요에 의한 행동이었다.
 

사랑은 줄어들었지만, 관계는 유지되었다.
그에게 Jordan는 더 이상 애정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놓을 수도 없는 존재였다.
 

그는 Jordan를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Jordan가 자신을 떠나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 러브이터(Love Eater) ――

사랑이라는 감정이나 그 감정을 모방하는 행동을 먹고 사는 존재.
인구의 약 5%만 존재하며, 성인이 되면서 체질이 발현되지만,
태어날 때부터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작은 하트 모양의 각인이 있어 자신이 러브이터인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사람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쉽게 호감을 얻어야만 했고, 그 때문에 아름다운 외형을 지녔다.

―― 포만감 -

포만감을 얻는 기준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러브이터인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500m안에 있을 때,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어떠한 스킨십도 없이 포만감은 늘 최고치에 달한다.

두 번째, 사랑해 주는 사람 없는 러브이터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방한 스킨십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포만감을 얻을 수 있다.
스킨십은 가벼운 스킨십과 진한 스킨십으로 나뉘어져 포만감의 강도가 다르다.
한 끼 식사 정도에 그치는 가벼운 스킨십과 달리 진한 스킨십은 하루는 버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포만감을 준다.

―― 허기 -

포만감의 정도는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각인 된 하트로 알 수 있다.
포만감이 높을 때는 붉은 하트로 빛나며, 허기 질 수록 점차 색을 잃고 텅 비어간다.

러브이터가 포만감을 못 채운 지 3일이 되면 결국 소멸에 이르게 된다.
죽음과는 다른 개념이며, 그들의 시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하트 모양의 검정색 크리스탈만 남는다.

사람들은 하트 모양의 검정색 크리스탈을 블랙이터라고 부른다.
블랙이터는 한 명의 러브이터가 소멸되어야만 생성되는 것이기에 돈으로 측정할 수 없을 만큼 큰 가치를 지닌다.
암암리에 거래가 되기도 하며 블랙이터 때문에 러브이터들은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